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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의 능행을 심층 분석하다

고양 서오릉 내 명릉으로 향하는 길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이재필)는 조선시대 국왕이 선대 왕이나 왕비의 능에 제사를 지내거나 참배하기 위해 행차하는 ‘능행(陵幸)’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지난해 진행한 심화 연구의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국가유산청과 궁능유적본부 누리집을 통해 공개하였다.

  * 국가유산청 누리집(https://www.khs.go.kr), 궁능유적본부 누리집(https://royal.khs.go.kr)

  이번 보고서에는 조선시대 국왕의 능(陵), 원(園), 묘(墓) 왕릉군의 행행(行幸) 양상과 사례를 시기별, 지역별로 분석하여 확인한 다음의 내용들을 수록하였다.

  * 행행(行幸):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던 일

  첫째로, 조선시대 국왕이 직접 방문하여 의례를 행하는 공간으로써 왕릉이 지니는 의미와 능행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를 지나며 종묘보다 왕릉으로의 친행이 늘어남에 따라, 왕릉에서의 의례 행위는 그 목적에 따라 친제(親祭,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일), 작헌(酌獻, 능에 나아가 술잔을 올리는 일), 전알(展謁, 능에 행차하여 절을 하는 일), 사릉(辭陵, 제향을 마치고 돌아간다고 알리는 일), 봉심(奉審, 왕릉을 보살피고 점검하던 일) 등으로 세분화되었는데, 이를 통해 능행은 국왕의 정치적 정통성과 통치자로서 대민 친밀성을 강조하는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조선시대 능행 과정에서 함께 시행된 행사들을 규명해 수록했다. 능행은 국왕 개인이 도성 밖으로 행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으며, 적지 않은 시위 병력과 수행 인원이 뒤따랐다.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국왕들은 사냥, 진법 훈련 등의 군사 활동을 하거나 백성들에게 농사의 작황과 그들이 겪고 있는 여러 고충 등을 묻는 대민 활동을 수행하였다.

Editor.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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