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전역 대규모 공습…최소 11명 사망, 주요 인프라 파괴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우크라이나의 심장부인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거점을 대상으로 러시아가 10일(현지시간) 크림대교 폭발 사고에 대한 보복 공습을 감행했다.
출근길 도심의 민간인들을 무차별하게 타격한 이번 공습으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에너지 시설 등 전국의 주요 기반 시설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서방 국가들은 민간인을 겨눈 이번 대규모 공습을 전쟁범죄로 규정하며 제재 강도를 더욱 끌어올리기로 했고, 우크라이나의 반격과 러시아의 추가 대응 가능성도 적지 않아 전황은 갈수록 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월요일 출근길 강타한 미사일과 이란제 공격용 드론
우크라이나 경찰청과 국가 긴급구조대 등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전국적으로 11명 이상 숨지고 64명이 부상했다. 사상자 규모는 향후 구조 상황 등에 따라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러시아군이 미사일로 공습한 지역을 열거했다.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서부 르비우와 중부 드니프로, 동남부 자포리자, 북부 수미, 동북부 하르키우 등 피해 지역은 전방위에 걸쳤다.
이 밖에도 크멜리츠키, 비니츠시아, 이바노 프랑키비츠, 지토미르, 키로보흐라드 등 많은 도시가 미사일 공습을 당했다. 10개 지역에 걸쳐 12개 도시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고 에너지 등 주요 기반 시설이 파괴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에너지 시설에 타격이 발생하면서 곳곳에 정전이 잇따르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변전소와 화력발전소 등에 미사일이 떨어져 11일부터 에너지 수급이 안정화할 때까지 전력 수출을 중단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습에는 수십 발의 미사일과 더불어 이란산 무인공격기도 동원됐다고 대통령실은 덧붙였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격한 건 지난 7월28일 키이우 내 비시고로드의 기반시설 등을 폭격한 이후로 70여일 만이다.
◇ 체면 구긴 푸틴, 강력한 보복으로 국면전환 모색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공습이 이틀 전 발생한 크림대교 폭발 사고에 대한 보복 공격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향후에도 동일한 일이 생기면 가혹하게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자국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오늘 아침 국방부의 조언과 참모장의 계획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에너지·통신 시설 및 군사지휘 시설 등을 고정밀 장거리 무기를 사용해 타격했다”면서 “크림대교 폭발은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배후인 테러 행위이며 우리 영토에서 이런 일이 계속되면 러시아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러시아의 공격은 출근길 도심과 에너지 관련 기반 시설 등을 동시에 타격해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전쟁 수행 능력과 저항의지를 꺾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동북부와 남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수복 작전에 고전해온 러시아로서는 크림대교 폭발 사고를 계기로 강력한 보복을 통해 국면 전환을 꾀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젤렌스키 “전기는 끊겨도 우리 자신감의 단절은 없다”
서방 국가들은 대대적인 미사일 공습을 만행으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미스터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상대로 시작한 불법 전쟁의 잔인함을 다시 보여준다”고 규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동맹 및 파트너와 함께 계속해서 러시아가 침략에 대한 비용을 치르게 하고, 푸틴과 러시아가 잔혹 행위와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지게 하며, 우크라이나군이 조국과 자유를 지키는 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지역 방문 중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쳐 민간인을 대상으로 고의로 공격했다”며 “이는 이번 전쟁 본질에 엄청난 변화”라고 말했다.
주요7개국(G7)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11일 화상으로 긴급 회담을 하고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편에 설 것이며 EU로부터 추가적 군사적 지원이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도 수일내에 우크라이나에 전방위 방공시스템인 IRIS-T SLM을 공급할 것이라고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이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격이 시작된 이날 아침 키이우 집무실 근처의 광장으로 나와 대국민 연설을 하는 장면을 셀프 카메라로 직접 촬영해 대통령실을 통해 배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상대하고 있다”면서 “그들이 원하는 한 가지는 공포와 혼란, 에너지 시설의 파괴이며 또 다른 한가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능한 한 큰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러시아의 공격을 비난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이다. 우리는 서로를 돕고, 우리 자신을 믿는다. 우리는 파괴된 모든 것을 복구한다”면서 “이제 정전이 있을 수 있지만, 승리에 대한 우리 자신감의 단절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날 주요 거점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군 역시 과감한 역공에 나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영토 수복 활동이 벌어지는 동부·남부 전선 곳곳에서는 집중력을 잃지 않는 동시에 러시아의 점령지나 점유물 가운데 상징성이 큰 대상을 타격함으로써 기세를 되찾으려고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 역시 ‘가혹한 대응’을 공언한 상태여서 향후 전황은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갈수록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