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21번’ 尹 유엔연설…’WMD·인권유린’ 北변화 우회촉구
(뉴욕=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국제사회가 직면한 복합 위기를 돌파할 해법으로 ‘자유’와 ‘연대’를 제시했다.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제77회 유엔총회 연단에 오른 윤 대통령은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국제 규범과 유엔 시스템을 존중하며 연대를 강화할 때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정부 수립 후 첫 전후 세대 대통령으로서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증언하며, 이른바 ‘기여 외교’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 원칙론적 입장으로 北·中 겨냥?
윤 대통령은 ‘자유와 연대 : 전환기 해법의 모색’이라는 제목의 이날 연설문에서 ‘자유’를 21회, ‘유엔’을 20회, ‘국제사회’를 13회 각각 언급했다.
대통령 취임사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관되게 부각했던 자유의 가치를 첫 번째 ‘유엔무대 연설’을 통해 거듭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복합 위기에 대한 변혁적 해법을 모색해보자는 게 올해 유엔총회 주제”라며 “윤 대통령이 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제사회는 전통적인 안보 위기를 넘어 감염병 확산(팬데믹)으로 인한 보건 위기,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 디지털 격차에 따른 양극화 심화 등으로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진단이다.
그에 대한 윤 대통령의 해법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이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유엔 시스템과 보편적 규범 체계에 등을 돌리고 이탈하게 된다면 국제사회는 블록화되고 그 위기와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핵 해법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대북 메시지는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대북 접근법인 ‘담대한 구상’ 발표에서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 힘에 의한 현상 변경 ▲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 ▲ 인권의 집단 유린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 요소로 거론한 대목이 주목된다.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확장을 꾀하는 중국을 우회적으로 겨냥했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특히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미국이 중국을 비판할 때 흔히 사용하는 용어이며, ‘인권의 집단 유린’ 역시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나 티베트 문제를 연상시킨다.
아울러 핵·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며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동시에 인권 문제를 지적받아온 북한의 변화를 촉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유엔과 함께 책임 다할 것” 마무리 발언 막판 추가
윤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기여 외교를 특별히 강조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도움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으며, 그 토대 위에 고도성장을 이룬 만큼 이제는 우리도 받은 대로 갚을 때가 됐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유엔의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러므로 세계 시민의 자유 수호와 확대, 그리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유엔과 함께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무리 발언을 연설 직전에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미국, 캐나다를 차례로 방문하는 윤 대통령의 이번 해외순방 일정 자체가 국제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기여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 영국, 캐나다 순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한국에 파병했다는 점에서다.
윤 대통령은 국내에서의 ‘약자 복지’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로 확장하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약자 복지는 문재인 정부 복지 정책을 ‘정치 복지’로 규정하고 그 반대 개념으로 제시한 용어다.
윤 대통령은 연설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마련하면서 전반적인 긴축 기조에도 불구하고 취약계층과 약자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확대가 지속 가능한 번영의 기반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에서 어려운 나라에 대한 지원은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오늘 연설은 약자 복지의 글로벌 비전”이라며 “집단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소국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953년 1인당 GDP(국민소득)가 67달러 정도였는데, 이제는 3만 달러가 넘는 전 세계 12위 국가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 ‘보건 위기’ 선도적 대응 부각
윤 대통령이 방점을 찍은 기여 외교는 자유 연대의 한 방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세계시민의 자유와 국제사회의 번영을 위해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첫 번째로 글로벌 보건 체계 강화를 위한 기여를 내세웠다.
특히 “오는 11월 미래 감염병 대응을 위한 글로벌 보건안보 구상(GHSA) 각료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통령실은 보도자료에서 이 회의체에 대해 “미국 주도로 전 세계 30여 개국과 보건 관련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강력한 국제 공조 체계”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또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연구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며, ACT-A 이니셔티브에 3억 달러, 세계은행의 금융중개기금에 3천만 달러를 각각 투입하기로 하는 등 재정적 기여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중 ACT-A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의 개발, 생산, 공평한 접근을 촉진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주도로 2020년 4월 출범한 다자 협력체다.
아울러 금융중개기금은 미래 감염병 확산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신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기금으로 주요 20개국(G20) 등이 주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밖에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통한 디지털 격차의 완화를 연설에서 함께 언급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유엔의 과거이자 현재로서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증거하는 연설”이라며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국가로서 기여 외교를 밝히는 계기”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