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없던 하루…초유 서비스장애에 ‘초연결사회’ 흔들(종합2보)
(서울=연합뉴스) 임은진 오규진 기자 =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네트워크 일상이 일순 정체됐다.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035720] 계열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킨 지 만 하루가 지나도록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
16일 오후 5시 현재 서비스 장애가 일어난 지 24시간이 지났지만 카카오 대표 서비스인 카카오톡과 카카오페이, 카카오 T 등이 아직도 일부 기능에서 오류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 서버 전원 공급이 거의 끝나가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아직도 서비스가 완전 복구되는 시점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들 애플리케이션을 평소 자주 이용하는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고, 중소 상공인들은 실제 생업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월간 사용자가 무려 4천750만 명에 달하는 ‘국민 메신저’로서 자리잡은 카톡이지만, 이런 독점적 환경에 기반해 계열사를 빠르게 늘리며 급성장한 덩치에 비하면 그에 준하는 책임은 방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이번 상황을 매우 엄중히 인식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발빠른 사고 수습 지원과 함께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무 장관이 직접 대책을 지휘하라고 지시했으며,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오전 직접 사고 현장을 찾았다.
◇ “데이터센터 전기실서 불……카카오 전방위 장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화재는 15일 오후 3시 19분께 SK 주식회사 C&C의 판교 데이터센터 지하 3층 전기실에서 발생했다.
3분 뒤인 오후 3시 22분에는 데이터센터에 있는 서버 서비스 전원이 차단됐다.
이후 오후 3시 30분께부터 카카오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과 포털 사이트 ‘다음’을 비롯한 다수의 카카오 앱과 일부 네이버 서비스에 오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서버 일부를 둔 네이버의 검색과 뉴스, 쇼핑, 카페, 블로그, 시리즈온, 오픈톡, 스마트스토어센터 등 서비스도 제한적으로 원활히 제공되지 못했다.
불은 8시간여 만인 15일 오후 11시 46분께 진화됐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와 소방당국 등 관계자 10명은 이튿날인 16일 오전 10시 30분께부터 11시 40분께까지 1차 감식을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감식 결과, 지하 3층 전기실의 배터리 랙 5개가 전소된 상태”라며 “배터리 또는 랙 주변에서 전기적인 요인으로 인해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오는 17일 오전 11시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전기안전공사 등 유관 기관과 합동 감식을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 서비스 완전복구 시점은 아직
카카오[035720]에 따르면 대표 서비스인 카카오톡 메신저는 이날 오전 1시 31분께부터 모바일 버전에서 텍스트 메시지 수·발신 기능이 일부 복구됐다.
메시지 수신 알림음도 작동하고 있으며, PC 버전의 로그인은 오전 10시 25분께부터 가능해졌다.
보이스톡·페이스톡, 채팅방 생성, 이모티콘, 프로필 편집 기능 등도 정상화됐다.
그러나 오후 5시 현재도 사진과 동영상 등 용량이 큰 파일 전송은 아직 불가능하다. 쇼핑하기도 아직 서비스가 안 되고 있다.
카카오의 포털 ‘다음’을 비롯해 카톡 환경과 연동되는 카카오페이, 카카오 T 역시 하나둘씩 정상화되고 있다.
카카오페이에서도 송금, 증권, 보험 등 주요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인증, 알림톡 등 일부 서비스는 아직 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도 택시, 대리 서비스 등 주요 서비스를 대부분 복구했다.
카카오페이 역시 2분기 말 기준 누적 가입자 수는 3천815만 명,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2천195만 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오후 2시 30분 기준으로 앱 내 주차, 바이크 기능 등은 복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속상한 이용자들 “회사는 잘 쪼개더니 서버는 왜 안 나눠?”
늦은 복구 속도에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과 카카오페이 이용자들의 불편도 하루가 넘도록 계속됐다.
팀원들과 업무에 대해 논의하다 카카오톡 장애로 일일이 휴대전화 문자로 의견을 나눠야 했다는 회사원부터 주말을 맞아 약속을 잡았지만, 친구가 메신저를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는 시민까지 크고 작은 불편이 이어졌다.
주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으로 동료들과 업무 내용을 공유한다는 부산의 회사원 김모(48) 씨는 “아직 PC로는 카카오톡에 접속할 수 없어 PC에 저장해둔 자료를 내 이메일로 보낸 뒤, 스마트폰에서 이메일을 열어 다시 카카오톡으로 공유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했다”고 토로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민모 씨는 “거래처에서 카톡으로 사진 파일을 내려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주말 PC 접속이 안 돼 이메일로 다시 전송받아야 해 상당 시간 애를 먹었다”라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텔레그램을 사용했다”며 씁쓸해했다.
한 네티즌은 뉴스 댓글에서 “회사는 잘도 쪼개더니 서버는 나눌 생각 못 했나 보네”라고 했다.
이번 카카오톡 서비스 마비 사태로 대체 메신저와 플랫폼 서비스를 알아보는 시민도 급증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김모(40) 씨는 난생처음 메신저 ‘텔레그램’을 설치했다.
그는 “사실상 국내 스마트폰 세상을 독과점한 카카오가 이렇게까지 백업 시스템을 마련해두지 않았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대안으로 네이버 라인도 고민하다가 아예 외국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판교 센터에만 서버 집중?…”백업시스템 미비” 지적
카카오 서비스 장애가 장기화한 것은 실시간 데이터 백업 체계와 재난 장애 대응이 미비한 탓이 크다고 IT업계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카카오 서버가 입주한 판교 SK 주식회사 C&C 데이터센터 화재가 서비스 장애의 1차 원인이긴 하지만, 하나의 데이터센터 전기실에서 난 불로 카카오의 대다수 서비스가 만 하루가 지나는 동안 장애를 겪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함께 입주한 네이버가 비교적 빨리 서비스를 복구한 사실을 비교하면 카카오의 대응에 문제점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용자가 이용하는 IT 서비스는 여러 데이터센터에 서버를 분산하는 이중화 작업을 통해 비상사태에 대비한다.
한 곳이 화재나 지진, 테러 등으로 작동을 멈춰도 다른 센터에 백업된 데이터로 서비스를 즉각 재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카카오는 이중화 작업은 했지만, 사고가 난 데이터센터에 있는 서버 약 3만2천 대의 전력 공급이 안 될 정도로 불이 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더군다나 10년 전에도 LG CNS가 운영하던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 장애로 4시간 가까이 카카오톡을 서비스하지 못한 적이 있어 더욱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에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IT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로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잘 드러나지 않는 분야에 투입되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기업들의 분위기 탓으로 분석했다.
◇ 정부 “엄중”, “책임’ 잇달아 강조…정부·정치권도 대책 마련 분주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카카오, 네이버 등 디지털 부가 서비스 중단으로 우리 국민께서 겪고 계신 불편과 피해에 대해 매우 무겁게 느끼고 있다”며 “책임 있고 신속한 서비스 복구를 하도록 정부 부처도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도 “네트워크망 교란은 민생에 상당한 피해 줄 뿐 아니라 유사시 국가 안보에도 치명적 문제를 야기한다”며 사태의 엄중함과 함께 “기업의 책무”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책반을 격상해 이종호 장관에게 이번 사고 수습과 대책을 직접 챙기라고 지시했으며, 이 장관은 이날 오전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이 장관은 “정부는 이번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면서 “각 사업자는 자사의 서비스가 갖는 대국민 파급 효과를 통감하고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기본을 튼튼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태가 국민 생활에 미친 영향이 큰 만큼 국정감사에 카카오와 네이버, SK 주식회사 C&C 경영진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